
콘택트라는 영화에서는 여주인공이 외계인의 언어를 배워 외계인의 사고체계를 가지게 되면서 미래를 보는 능력을 얻는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라는 사피아 워프의 가설이 전제되어 있는데, 문과계열의 ‘인터스텔라’라고 불리는 SF 영화계의 대작이다.
정말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규정할까? 물론 우리가 외계인의 언어를 배울 일은 없겠지만, 대신에 글로벌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은 영어라는 새로운 언어 공부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어를 배운다면 영국인처럼, 혹은 미국인처럼 사고할 수 있을까?
나는 군대에서 영어공부를 하면서 힘들 때마다 영어 공부에 관한 책을 읽곤 했다. 그중에서 나에게 언어 공부 자체에 굉장한 흥미를 불어넣어준 책이 있는데, 바로 '플루언트'라는 책이다.
플루언트에서는 우리에게는 왜 이렇게 영어공부가 어려운지를 설명하며 서구권 언어 사용자와 동양권 언어 사용자는 사고체계가 다르다고 한다. 각 언어의 문법 구조상 동양인은 '큰 것에서 작은 것' 순서로 세상을 인식하고, 서양인은 '작은 것에서 큰 것' 순서로 세상을 인식한다. 그에 대해서 '공항 사진 실험'을 소개한다.

비교문화학자 리처드 니스벳은 동아시아 언어를 사용하는 그룹과 영어를 사용하는 그룹에게 각각 공항 사진을 보여주고, 배경의 건물 모양이나 비행기 색등이 조금 다른 같은 사진의 여러 버전을 보여주면서 그 차이를 발견하는지 실험한 것이다. 이 실험에서 영어 사용자는 비행기 기종이나 색상, 모양이 달라졌을 때 곧바로 알아챘다. 반면 동아시아 언어권 사람들은 사진의 배경이 달라지거나 비행기 위치가 달라졌을 때 재빨리 파악했다. (플루언트 p64)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각 문화권의 문법 구조의 차이 때문이다. 만약 한국말로 자기소개를 한다면 "서울에 있는 여의도초등학교 5학년 3반 조승연입니다"라고 서울> 여의도 초등학교> 5학년 3반> 조승연으로 범위를 좁혀 온다. 반면 영어로 한다면 "I am John Smith, a Civil Engineering majar at University of Pennsylvania."가 되어서 John Smith(이름) > Civil Engineering majar(전공) > University of Pennsylvania(대학교) 순서로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범위를 확장해 나간다. (플루언트 p66)
이런 실험을 보면 우리가 영어로 말문을 열기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눈에 먼저 보이는 것은 커다란 배경인데, 말은 작은 객체에서 시작해야 하니 혼란이 오는 것이다. 언어의 유창성의 비밀은 단순히 한국말을 영어로 바꾸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닌 사고의 확장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라는 가설은 몇 가지 오류가 있는 논쟁적인 가설이다. 하지만 하나의 언어가 역사, 문화, 그리고 사고방식까지 담겨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단순한 번역을 통한 의미 전달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유창성을 얻을 수 없다. 만약 이런 언어 공부의 매력을 깊게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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